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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원리를 찾아서..(9편) 17. 병인, 사기와 염증 / 18. 진단, 망문문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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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병인, 사기와 염증   한의학은 질병을 내인과 외인, 그리고 내인도 아니고 외인도 아닌 불내외인으로 분류합니다. 내인의 질병원인은 주로 음식상이고, 외인은 외상과 육음에 의한 외감이 주요 질병원인이며, 불내외인은 칠정상과 방로상이 대표적인 질병원인입니다.   육기의 변화를 따라 질병을 일으키는 사기는 육음이라 했습니다. 음식상, 외상, 외감, 칠정상, 방로상 등의 한의학적인 질병원인은 육음과 같은 사기에 의해 좀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실제 질병을 일으킨 주범으로 추정되는 사기는 육음과 같이 자세하게 분류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사기는 대부분 정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음식상과 외감 등 외형상의 질병원인은 존재론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사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의 질병원인은 사기이며, 작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존재에 대한 심증은 있지만 미묘하여 볼 수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분류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일으킨 현상은 분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외형상의 질병원인을 추적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사기가 일으킨 질병 현상은 해부학적인 위치에 따라 공간적으로 분류했고, 질병의 과정에 따라 시간적으로도 분류했으며, 통증의 위치에 따라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증상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질병은 질병명을 붙여서 분류했습니다. 증상이 일정한 질병은 하나의 사기에 의해 일어난 질병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기에 의해 일어난 질병은 질병의 진행과정에 따라 치료방법이 변할 수 있고, 치료에 적용된 여러 처방은 시간적인 순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증상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질병의 이면에는 사기가 침입하여 일으키는 일정한 변화의 과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 한의학을 연구했던 의가들은 질병의 이면에 있던 사기의 작용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상한론, 온병론, 양유여음부족론, 주화론, 보비론, 부양론 등등의 많은 한의학의 질병에 대한 담론들은 사기의 작용과 인체의 반응에 대한 각각의 단면들일 것입니다. 각각의 단면들은 사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적인 인체의 반응을 의미하며, 육안해부학 너머에서 펼쳐지는 질병에 대한 방어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이들 담론들은 육안해부학 너머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사기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고, 모든 사기에 대한 공통적인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담론들이 모든 질병의 치료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모든 사기에 대한 공통적인 반응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   결국 사기가 무엇이며 육안해부학 너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먼 이국의 학자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현미경으로 밝혀낸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와 미생물들이 엮어내는 미시기생이 육안해부학 너머에서 인류의 생존과 함께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기가 일으킨 질병의 증상과 증후군의 원인을 현미경수준의 해부학으로 환원하면 세포와 미생물, 그리고 면역에 관여하는 세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질병들은 이들이 엮어가는 생존경쟁이야기의 인간적인 버전입니다. 그 이야기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염증이며, 염증 역시 하나의 이론입니다. 과거 의가들의 이론보다 염증이론이 각광받는 것은 좀더 많은 질병을 설명할 수 있고, 육안해부학 너머의 현미경적인 구조와 기능이라는 기초위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가들이 펼친 이론들은 육안해부학 너머에서 펼쳐지는 세포들의 생존경쟁이야기의 단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한의학의 입장에서는 염증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과거의가들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질병은 염증이며, 염증은 부종입니다.   18 - 진단, 망문문절   진단은 경락과 오장육부 그리고 정기신 기혈 등의 기초이론과 상한 잡병 체질 등의 질병론을 익힌 다음에 필요한 임상기술입니다. 한의학의 진단은 망문문절입니다. 보고 듣고 묻고 만져본다는 말입니다. 망문문절을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앞에 열거한 이론들을 충실히 익혀야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물을 수 있고 만져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고 듣고 묻고 만져보는 대상은 환자이며, 환자의 몸을 보고 환자의 말을 듣고 환자에게 묻고 환자의 몸을 만져보는 것입니다. 환자의 몸을 본다는 것은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인체의 모양과 변화를 읽는다는 뜻입니다. 정형화된 인체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인체의 모양과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준이 되는 정형화된 인체라는 개념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반응하고 적응하며 삶을 영위합니다. 인체에는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생활사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시에 의학적으로는 병태생리학의 근거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듣는 행위가 더해집니다. 보는 것은 몸의 외부만을 관찰할 수 있고, 듣는 것은 몸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생리적이며 병리적인 현상을 비유와 은유를 통해서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기술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고통을 일으킨 몸속의 육안해부학적인 위치와 현미경해부학적인 상황을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봄으로써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인체를 이해하고, 들음으로써 인체내부의 상황을 보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육안해부학과 현미경해부학이 밝혀낸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익혀야하고, 한의학의 기초이론과 질병론을 해부학으로 밝혀낸 인체의 구조와 기능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합니다.   들어서 질병의 위치와 기능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면, 즉 환자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환자의 말이 사실(해부생리학에서 밝힌 구조와 기능)과 부합하는지 확인해야합니다. 환자는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에 환자의 진술을 좀 더 정확한 인체의 구조와 기능으로 안내하여 변화를 찾는 것이 묻는 것입니다. 또한 보면서 발견한 몸의 모양과 변화를 환자의 진술과 연계해서 확인할 때도 물어야 합니다. 해부생리학을 포함하는 교과서적인 이론과 질병론이 풍부할 때 환자의 진술에 확실하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보고 듣고 물으면 대략적인 환자의 몸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해부학적인 위치에 대한 확인은 만져서 하게 됩니다. 통증의 경중과 통증의 범위, 입체적인 내부장기의 감별확인은 만져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체온과 호흡수, 맥박, 맥압 등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는 것 역시 만지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바이탈사인은 정형화된 인체의 정보이며, 질병상태의 경중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진단은 지식의 양과 비례하는 기술입니다. 질병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진단의 기준은 정상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반응과 적응을 이해하고,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진단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입니다.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일상에서 벗어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진단의 시작입니다. 환경, 일상, 해부학, 기능과 구조, 병인 등의 다양한 것들을 엮어내는 데에는 지식을 넘어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환자의 주소를 이야기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하고, 그 이야기를 환자가 동의해주어야 진단이 끝난 것입니다. 따라서 진단은 가장 창조적인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