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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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경락, 기의 통로
동의보감의 목차 속에서 도가적인 생명관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관을 가지고 의학입문의 목차 속으로 돌아가면 경락과 장부를 만나게 됩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기가 오관을 통하여 몸속으로 들어오면 반응이 일어나고, 반응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기와 음식물에서 만들어진 기는 몸의 곳곳에서 맥박이 되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관을 통하여 들어온 기와 음식물을 먹어서 만들어진 기가 맥박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몸 안에 길이 필요합니다.
한의학에서 경락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맥, 경맥, 낙맥 등 맥의 종류를 나누는 단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해부학에서 정맥과 동맥 등의 관구조물들은 육안으로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피부에서 볼 수 있는 정맥혈관들은 실제 해부학에서 관구조물을 찾는데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이고, 맥박은 이러한 관구조물을 타고 움직인다고 유추했을 것입니다.
맥이라 명명된 관구조물인 혈관을 통하여 혈액이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혈액을 움직이는 추동력을 기라 유추했으며, 기가 드러내는 물리적인 현상은 맥의 박동이었습니다. 온 몸에서 관찰되는 맥의 박동에는 모두 이름을 붙였고, 그 박동이 드러내는 생명현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맥박의 생리학이며, 순환계의 원리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라 짐작합니다.
약 10세기를 지나면서 경락이 순환한다는 순환맥계가 등장하였고, 순환맥계와 경략이 심장쪽으로 향한다고 생각한 향심맥계가 지금까지 공존하고 있습니다. 향심맥계의 대표적인 증거로는 오수혈을 들 수 있습니다. 정영수경합으로 명명하고 있는 오수혈은 손가락과 발가락의 끝에서 시작하여 팔꿈치와 무릎으로 향하고 있는데, 정맥혈의 환류를 따라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의학에 있어서 질병치료의 대강은 경락병과 내상병을 나누었고, 경락병은 침뜸으로 다스리고, 내상병은 약으로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질병의 전이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도 병이 경락을 먼저 침범한 이후에 심해지면 부에 전이되고, 부에서 심해지면 장으로 전이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락은 외부환경과 직접 접촉하는 부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방어에 있어서도 경락은 장부를 보호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관을 통해 들어온 기와 음식물을 통해 장부에서 생성된 기는 질병을 방어하기 위해 경락을 따라 온 몸으로 골고루 퍼져야하고, 골고루 퍼지지 않으면 질병이 침입할 수 있으며, 골고루 퍼지지 못하는 현상은 맥박으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맥박의 항진과 침체는 질병의 현상으로 인식되었고, 맥박의 항진과 침체를 조정하여 정상적인 박동을 찾으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맥박의 근본적인 기원은 기이기 때문에 침은 당연히 기를 조절하는 도구이며, 침술은 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경락은 기가 몸에서 움직이기 위한 길이며, 몸의 외부에 위치하여 질병을 막는 작용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락을 기의 통로로 보는 것을 경락학설 중 하나인 기설이라 하며, 이밖에도 경락학설은 10여 가지가 넘게 존재합니다.
의학입문에서 경락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가 어떻게 몸속에서 움직이는지를 설명고자 했고, 목차에서 보듯이 해와 달과 오행성의 주기적인 운행의 연속선상에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거시적인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의학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인체는 거시적인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반응하는 개체를 관찰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16 - 장부, 한의학의 해부생리학
의학입문은 경락의 다음에, 동의보감은 기혈 이후 장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체의 구조에 대해 설명할 때가 된 것이지요. 육안해부학에서 볼 때 오장육부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구조물입니다. 의학입문의 장부조분은 각각의 장과 부의 크기와 무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학입문 이전에 해부학적으로 오장육부의 구조에 대해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동물을 통한 비교해부학과 사체에 대한 해부학을 통해서 내장장기와 근골격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런 사실이 표리와 내외라는 개념을 뒷받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육안해부학적인 지식들은 경락에서 부로, 부에서 장으로 질병이 전이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근거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경락이 근골격계에 국한되어 표시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해부학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육안해부학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기는 대부분 확인 했고, 이를 질병과 연계하여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육안해부학에서 발견된 장기들이 실제 질병상황을 설명하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질병이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질병의 전이 과정을 통해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기관계에 대한 계통해부학은 육안해부학적인 시각에서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경락과 정기신, 기혈 등의 전신적인 기능에 대해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들이 대부분 기관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부생리학적인 시각과 더불어 인체의 작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경락과 정기신, 기혈 등의 한의학적인 개념의 이해는 육안해부학의 너머에서 해석을 기다리는 기관계에 접근하는 단서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해부학의 발달이 반드시 질병치료와 질병의 해석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한의학의 입장에서 발달된 육안해부학은 구조를 확인하는 정도의 가치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의림개착에서 왕청림이 횡격막을 확인하고 싶어 안타까워했던 순간들을 기술한 것과는 달리, 횡격막을 확인한다고 해서 경험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장육부가 현대의 해부학적인 장기와 동일한 장기라는 것입니다. 장부론을 해석하면서 확인해야할 것은 과거 한의학에서 육안해부학적인 사실들이 질병을 해석하는데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알아내는 일입니다. 현미경해부학과 더불어 발전한 생리학을 통해서 한의학이 육안해부학의 너머에서 보고자 했던 인체의 기능들을 유추하는 것도 질병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의학입문의 장부총론과 장부조분을 동의보감의 오장육부와 비교하고 해석해 들어가면 한의학이 인체를 어떻게 다루고자 했는지 분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석을 위해 현대의 해부생리학적인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며, 환경에 적응하며 반응하는 인간을 연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