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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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신, 미래를 예측하다
우리는 오늘도 아침에 무사히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발을 옮기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가스렌지에서 조리를 합니다. 주방으로 발을 옮길 때 방문을 열고 문 앞에 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피해 식탁의 모서리를 지나 무사히 싱크대 앞에 다가갑니다.
열고 피하고 지나가고 다가가는 행위는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개체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하고 지나가고 다가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해야합니다. 이처럼 피하고 지나가고 다가가는 행위에는 기계적인 의미에서 선결조건이 필요합니다. 즉 장난감 자동차, 식탁 모서리, 싱크대를 의식할 수 있어야합니다. 주방으로 가는 동안 이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는 보아야하고 피해야하는 것이지요.
장난감 자동차에 도달하기 전에 보아야하고 피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시간적으로 장난감 자동차에 도달하기 전에 장난감 자동차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그것과 부딪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만 피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장난감 자동차와 부딪치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체에 닿기 전에 피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서 접근하는 행위의 근저에는 예측한다는 사실이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은 일차적으로 장난감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이차적으로 이렇게 수집된 정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생명체는 외부환경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판단하고, 판단한 정보에 적절하게 반응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외부환경에서 주어지는 각각의 정보에 대한 반응을 종합하고, 반응하기 어려운 정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적응함으로써 생명체들은 생존의 범위를 넓혀나갑니다.
한의학의 신은 영과 혼과 백으로 나누어집니다. 동의보감의 신문에는 전증이나 광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처방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정신적인 질환을 다루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현상을 분류하고, 분류된 현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근원적인 기능을 유추할 수 있어야합니다. 진화론적이며 신경생리학적인 입장에서, 정신현상은 생명체의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는 예측시스템이라 규정하기도 합니다.
신을 이루는 영과 혼과 백은 정신적인 현상에서 볼 때 의식과 무의식에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혼은 의식과 대응시킬 수 있고, 백은 무의식과 대응시킬 수 있으며, 영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의식의 너머에 존재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의 무의식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반사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고, 영은 생명체가 갖는 정보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정보들의 세계에 형성된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정의에서 적응과 반응은 미래에 대한 예측의 결과이며,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보수집에 이은 의식적인 판단이고, 의식은 한의학의 신과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의 신은 생명의 정의 중 적응과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학입문 장부조분의 심에는 혈육의 심과 신명의 심으로 심의 작용을 분류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명은 예측하는 신과는 조금 다릅니다. 심에서 거론하는 신명은 감정 즉 한의학에서 말하는 칠정에 해당하는 현상이며, 신의 분류 중에서 백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정기신의 정을 백의 범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칠정과 정에는 무의식적인 요소가 깔려있는 것입니다.
14 - 기와 혈
동의보감의 기편에서 기는 호흡과 관련된 현상이고, 감정의 변화(칠정, 구기)와 관련된 증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혈은 간단명료하게 혈액을 만드는 과정과 혈액의 운행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였고, 출혈과 관련된 증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는 호흡을 통하여 드나드는 공기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 안에서 돌아야 하고, 혈은 움직이는 기를 따라 돌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기혈이 모두 음식에서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혼천설에서 말하는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기혈에서의 기는 다른 기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의 기는 인체, 즉 신형에서 생명을 이끄는 힘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여 발견한 생명현상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천설에서의 기는 텅 빈 것 같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호흡을 통해서 드나드는 공기와 같은 종류의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인체에 기가 드나드는 통로가 있고, 그 통로를 구규라 하였습니다. 이때의 기는 분명 외부에 있는 무엇이며, 구규는 오관과 항문과 요도를 말하는 것이므로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고 대변과 소변으로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 소리, 맛, 냄새, 촉감이 호흡을 통해서 들어오는 공기와 더불어 인체내부에 필요한 어떤 것을 전해 준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혼천설에서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가 인체에 필요한 정보와 물질을 싣고 구규를 통하여 몸속으로 드나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생명현상을 이끄는 힘이라는 관점의 기와 하늘을 가득 채운 기는 분명 다른 개념입니다. 혈은 인체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상처에서는 반드시 붉은 피가 보이며, 그 붉은 피로 가득 찬 정맥혈관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혈과 혈관 그리고 맥박이 이루고 있는 순환계를 설명하는 것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기가 호흡을 통하여 드나드는 현상과, 심장박동과 더불어 인체 각 부위에서 발견되는 맥박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흡과 맥박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을 해와 달과 오행성이 만들어 내는 주기성과 대응시키면, 하늘을 가득 채운 기가 해와 달과 오행성을 품고 있듯이 또한 인체내부의 해부학적인 구조물들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몸 안에 기가 들어오면 혈이 이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먹지 못하고 숨 쉬지 못하면 생명을 잃게 되는데, 심장박동과 호흡이 멈추는 것은 생명이 다한 가장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는 이처럼 음식물에서 생성되고 유지되는 생명현상의 한 측면입니다. 기혈론에서의 기는 생명현상을 이끄는 동적인 힘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혈은 생명현상을 이끄는 정적인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보와 물질을 실어 나르는 기는 해와 달과 오행성의 주기성을 인체내부로 실어 나르고 있다고 생각했고, 생명현상을 이끄는 동적인 힘으로써의 기는 하늘을 가득채운 기의 흐름과 리듬을 통해서 만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두 가지 기가 이끄는 동적인 생명현상은 혈과 만나 맥박이 되어 몸의 여러 곳에서 물리적인 현상을 드러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