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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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정, 종족보존의 본능
동의보감의 정부분에 인용된 처방들은 대부분 남성의 성기능(발기불능, 조루, 유정 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정은 인체의 기능 중에서 성기능과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남성의 성기능과 관련된 해부학적인 구조는 자세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고, 기능적인 면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힘에 의해서 태어나고, 어떤 힘에 이끌려 살아가고, 어떤 힘이 움직이게 만들고, 어떤 힘이 질병을 막아주고, 무엇이 생각하게 하고 예측하게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은 동의보감 시대에는 다분히 생태학적인 관찰과 철학적인 사유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동의보감의 정은 생물학적인 생명의 정의에서 번식에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생식기의 구조와 기능의 최종적인 목적은 자손의 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손을 갖지 못하는 개체는 더 이상 생명현상을 이어갈 수 없었고, 번식할 수 없는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인들은 생명현상을 거시적인 개체단위에서 관찰하고, 개체들의 생노병사를 이끄는 근본적이며 공통적인 현상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현대 생물학에서 생명체를 정의하듯이 선인들도 생명체를 정의하고자 노력한 것이지요.
아프리카의 초원에 사는 사자의 생활사를 보면 야생에서 개체의 생존을 이끄는 공통적인 힘과 종을 이끄는 힘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이들 사자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 자신들의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토를 지키는 것은 우두머리 수사자이며, 이 우두머리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정해집니다.
한 무리에서 태어난 수사자는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그 집단에서 추방됩니다. 이렇게 추방된 젊은 수사자들은 한데 모여 생활하는 경향이 있고, 이들이 성장하면 기존의 사자 무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두머리 수사자에 도전하게 됩니다.
수사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본능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종의 퇴화를 막기 위한 젊은 수사자의 추방도 역시 본능적인 것입니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젊은 수사자들의 행동 역시 본능적입니다. 이렇게 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본능을 부추기는 힘을 ‘정’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본능적인 힘은 개체에서 성호르몬으로 환원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사자들의 행동이면에는 남성호르몬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사자들이 덩치를 키우고 근육을 단련하며, 우두머리 수사자에게 도전하고, 사자무리를 이끄는 힘들은 모두 남성호르몬으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식을 위한 본능적인 행동을 이끄는 모든 행위와 이를 지지하는 개체의 해부생리학적인 기능과 구조, 그리고 개체의 생명한계를 넘어 생명의 시간을 이어가는 종의 번식 등이 한의학의 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2 - 기, 활력의 종류
동양의 우주론중 하나인 혼천설은 항성과 땅 사이의 공간인 하늘을 기가 채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호흡은 음식물을 먹는 것처럼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를 들이 마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음식물을 먹고 소화시켜 필요한 것을 사용하고 필요 없는 찌꺼기는 대변으로 내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들이 마신 공기에서 필요한 것은 사용하고 필요 없는 것은 호기로 내보낸다는 것은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음식물은 육안으로 무엇을 먹는지 구분하기가 쉽지만 하늘에 가득한 기에서 무엇이 생존에 필요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흡입된 기가 인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인체의 원동력은 번식을 통해 개체에서 개체로 전해지고, 개체 내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힘으로 드러납니다. 사람이 생명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제일 먼저 드러내는 징조는 태아의 심박동일 것입니다. 진단장비가 없는 상태에서 가장먼저 임신을 확진할 수 있는 방법은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발생학적인 입장에서 볼때 한의학은 이를 원기라 명명하고, 사람이 갖는 최초의 힘으로 생각했으며, 사람의 움직임에 근본 바탕이 되는 힘으로 규정했습니다. 해부생리학적으로 이 힘은 순환계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심장을 움직이는 힘은 심장의 근육이지만 이 주기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심장에 위치한 특수한 신경세포(방실결절)입니다. 이 신경세포는 심장을 적출하여 생리식염수에 넣어 놓아도 오랫동안 심장을 뛰게 합니다. 스스로 발포하는 신경세포를 포함하고 있는 심장의 움직임은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힘에 의해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를 으뜸 원자를 써서 원기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심장박동이 있고 몇 개월 후에 태아의 발차기 즉 태동이 나타납니다. 역시 발생학적인 입장에서 한의학은 이를 진기라 명명했고, 원기와 더불어 사람의 움직임에 근본이 되는 힘이라 규정했습니다. 이 힘은 해부생리학적으로 신경계와 근육계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뇌간 소뇌 척수 등의 운동신경이 필요합니다. 심장의 방실결절과 마찬가지로 뇌간의 많은 신경세포들은 스스로 발포하여 신경신호를 만들어 내며 척수내의 많은 개재신경세포 또한 스스로 발포하여 반사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들 신경이 일으키는 신경신호 역시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힘의 하나이며 참 진자를 써서 진기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과정에서 최초의 호흡을 하며 신생아는 우렁차게 울게 됩니다. 자궁에 있을 때는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최초의 울음과 함께 시작된 호흡은 또 다른 근본적인 힘으로 생각했고, 여기에는 종기라 명명하였습니다. 이 힘은 해부생리학적으로 호흡계를 움직이는 힘이며 인체에서 유일한 음압입니다. 연수에는 호흡을 유지하는 신경세포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 세포 역시 스스로 발포하여 호흡운동을 일으키는 근육들에 자극을 주어 반사적으로 작용하도록 합니다. 호흡은 쉼호흡을 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조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쉼을 쉬게 됩니다. 이들 신경이 일으키는 발포현상 역시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힘의 하나이며 마루 종자를 써서 종기라 했습니다.
전통한의학에서 종기는 심장박동과 호흡을 모두 지칭하고 있지만, 사실 기의 종류를 세분하여 설명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순환구조론에서는 발생학적인 과정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관찰 가능한 인체의 기능들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찾은 최초의 현상들은 인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힘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들과 한의학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기의 종류들을 연결해보았습니다. 사람을 움직인다는 의미에서는 기는 하나이지만 발생학과 연관시킨 계통해부학으로 보면, 이렇게 분류하는데 무리가 없고 현대해부학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엄마의 젖을 빨고 태변을 내보내기 위해 장이 움직이며 복부에서 박동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의학은 이를 원기라 명명했고, 해부생리학적으로 이는 소화계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젖을 빠는 행위는 구순반사라하여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생명현상의 하나입니다. 태아가 살아가기 위해 자궁을 벗어나면서 무의식적으로 젖을 찾는 것이지요. 젖이 식도를 통과하면 위장관은 움직이면서 젖을 소화시키기 시작합니다. 위장관에도 척수에 있는 신경세포 수와 비슷한 수의 많은 신경세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신경세포 역시 스스로 발포하여 위장관의 근육을 움직이는데, 역시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힘의 하나이며 근원 원자를 써서 원기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질병을 앓고, 그 질병을 극복하며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걷게 됩니다. 이처럼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지키는 힘, 질병과 맞서는 힘, 질병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은 이를 바를 정자를 써서 정기라 명명하였습니다. 생명의 정의에서 보면 항상성이며, 해부생리학적으로 보면 면역계를 움직이는 힘이고 흐르몬체계의 균형입니다.
이렇게 정의한 한의학의 기는 생물학에서 정의하고 있는 생명의 정의와 비교하면 개체생명의 대사와 항상성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가적인 사유체계에서 기는 생물학에서 정의하는 대사와 항상성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생명체를 움직이는 좀 더 근본적인 힘들은 의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까다로우면서도 다루기 힘든 질문인 것 같습니다.
한의학 용어사전을 찾아보면 종기처럼 뚜렷한 표현도 있지만 원기가 정기의 일종이고 정기가 원기의 일종이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원기 등이 의학용어라면 당연히 이에 해당하는 현상이 나타나야하고, 이런 현상을 지지하는 해부생리학적인 구조와 기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순환구조론은 인체의 현상을 관찰한다는 입장에서 기의 종류에 접근해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