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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원리를 찾아서.. (연재 1편) 글을 시작하며 / 의학입문과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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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글을 시작하며 나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잘 정돈된 한의학의 총론이나 개론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음양이니 오행이니 운기니 하는 말들이 한의대에 들어가서도 낯설었지만 지금도 낯설음은 여전합니다.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자연과 자연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눈앞에 펼쳐지고 있을 텐데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때로는 화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마음 한편에 서운함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세월을 흘려보내며 궁금증을 따라다니다 보니 한의학의 커다란 그림을 이야기로나마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설프게라도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내 손으로 두드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커다란 그림의 한 부분이 조금 미진하면 누군가 보충하리라 생각하고, 틀린 부분은 또 누군가 바로잡으리라 생각하며, 내가 먼저 자판을 두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큰 그림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是是非非는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워 한의원이 한가합니다. 덕분에 게으른 독서를 조금 하면서 몇몇 부분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어서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2 - 의학입문과 동의보감 한의학의 커다란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마한 단서는 의학입문과 동의보감의 목차에 숨어 있었습니다.   동의보감과 의학입문의 목차가 내 시선을 끈 것은 ‘침에도 고향이 있다네.’를 쓰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침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한의학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도구, 즉 잘 정리된 총론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총론이 있으면 총론에서부터 차근차근 논리 전개를 하면 쉬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절실했었습니다.   이 무렵 선생님을 찾아가면 정기신에 대해서 묻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의보감의 목차에 관심이 갔고, 동의보감보다 약간 앞서 편찬된 의학입문의 목차와 비교해보게 되었습니다. 동의보감의 목차는 신형을 맨 먼저 이야기했는데, 이는 정기신에 앞서서 물리적인 인체를 먼저 생각했다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동의보감은 인체를 근간으로 하는 의학을 펼쳐 나간다고 생각했지요.   이에 반하여 의학입문은 선천도를 목차의 첫머리에 놓았습니다. 동그라미 기호는 난해함이고 해석의 지옥이지요. 현학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두번째 그림도 역시 현학적이고 난해함이며 해석의 지옥입니다. 감괘와 이괘가 만난 그림!!! 그 다음에 가서야 평범한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천지인물기후상응설에 이르러서야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요.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동의보감과 의학입문은 전혀 다른 사고의 체계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은 동의보감은 도교의 사유체계를 근간으로 구성되었고, 의학입문은 유학의 사유체계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의보감은 신형, 즉 인체의 움직임을 통해 동물로서의 생명유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동의보감 편찬자는 생물학적으로 생명의 정의에 해당하는 질문을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의학입문의 천지인물기후상응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즉 인류를 어떻게 자연 속에 자리매김 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지요.   현재 한의학은 동의보감적 사고와 의학입문적 사고가 혼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생태학적인 인간의 질병해석과 해부생리학적인 인간의 질병해석이 뒤섞여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의 생명관과 극동아시아지역의 우주관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