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당 한약이야기

한의학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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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당과 나의 한의학 이야기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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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 강의-지식을 시험받다 한의학순환구조론을 출판하자마자 출판사를 통해서 학생들이 몇 명 찾아왔습니다. 책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 사장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던 터라 강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약재로 사용되는 식물들을 해석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순환구조론적인 생각을 본초에 투영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00년 전 중국에서도 개화의 바람을 타고 서양의학이 물밀듯이 밀려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전통의학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하였고, 그들 중 몇몇은 현미경을 통해 발견한 정교한 해부생리학으로 전통의학을 해석하고 발전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청나라 말기에 활동한 그들을 중서의회통파라 부릅니다. 그들이 현미경으로 밝혀낸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향해 전통의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해부생리학이라는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한의학을 해석하는 한의학순환구조론의 입장에서 중서의회통파들이 남긴 저서들은 오래된 미래의 교과서였습니다. 그래서 본초문답이라는 책을 강의 교재로 선택하였습니다.   현미경으로 발견한 미세하며 정교한 인체의 구조와 기능으로 한의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본초문답의 저자와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동병상련을 느낀 셈이지요. 물밀 듯이 밀려드는 서양의학의 눈부신 기술 앞에서 전통의학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이를 만회해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지금의 제 처지와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100년 전 서양의학에 비해 지금의 서양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저는 100년 전 중서의회통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2000년 봄부터 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천문학과 신학과 경영학과 기계공학과 물리학과 출신의 한의대학생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의대외래교수님 한의사 등이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력이 말해주듯이 강의가 아니라 제 지식에 대한 점검이었으며 토론이었습니다. 한의학순환구조론에서 거론한 본초 이외의 본초는 일일이 찾아보고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상태여서 모임 참여자들의 추궁은 집요하고 신랄했습니다. 특히 과학적인 지식을 통해 설명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힘들게 몇 개월간의 모임이 끝나고 ‘본초문답과 순환구조론의 대화’라는 책으로 엮어졌습니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한의학 역시 자연과학의 방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모임은 9박 10일의 학생캠프로 연결되었습니다. 종종 한의과대학의 학생회에서 특강을 부탁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의 특강을 해본 다음에야 한의학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려졌습니다. 전에는 그저 한의학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치료기술을 발전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약분쟁 당시 의료법과 약사법에서 느꼈던 불가항력적인 무력감을 학문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해부생리학으로 말해지는 한의학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고, 설령 해부생리학으로 말해지는 한의학이 진실이라고 해도 한의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해부생리학 정도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보다 고차원적인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전통적인 한의학의 용어보다 해부생리학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한의학을 한결 쉽게 이해해주고 치료성적도 좋은데, 정작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더 어려워했고, 의심이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학생들과 캠프를 할 때마다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의학을 이해하는데 왜 하필이면 해부생리학이어야만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주가 되더군요. 의학을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부생리학을 공부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알면서 그 말을 반복해야했습니다. 캠프는 늘 허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정말 가끔 같은 꿈을 꾸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간절한 희망은 발전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한의학을 바라보고 이를 다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었으며, 한의학이 그렇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노력하길 바랄뿐이었습니다. 전통의학에서 벗어났다는 엄청난 소외감을 극복하고 수많은 참고서적의 압박감을 이겨낸 이들이 한명 두 명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모여서 화려하진 않지만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약선당 만의 진지함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1. 삶을 돌아보다 아이엠에프 경제난의 유탄에 맞아 몇 년 고생하고, 2002년 말에 한의원을 접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0년 정도 한의원하며 늘어난 책 등을 보관할 겸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심심하면 사무실에서 책이라도 볼 요량으로 조그만 사무실을 빌렸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의 백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나 두 번 광덕산에 오르고, 가끔 찾아오는 단골들과 알음알이로 수소문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한 둘 만나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의학신문인 민족의학지에서 부탁한 원고, 지역신문사의 부탁으로 칼럼, 시민단체의 칼럼 등을 몇 편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원장님들의 부탁으로 조촐한 강의도 해보았습니다. 백수처럼 산다는 것이 백수가 아닌 생활을 하게 되더군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단골들 덕에 한약을 직접 다려야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따라 약재를 씻어 말리고 물을 길어오고 달이는 과정을 직접 실천에 옮겼습니다. 손에 닿는 약재들이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하더군요. 글로는 느낄 수 없고 쓸 수도 없는 하찮으면서도 중요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머리로 할 것과 몸으로 배우는 지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수생활을 1년 반 정도하니까 찌들었던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동안의 경험과 선생님의 말씀으로 볼 때, 한의원을 제대로 하려면 넓은 면적과 개방된 공간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한의원을 한적한 곳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맘에 드는 자리를 찾아 6개월 정도 천안관내 거의 모든 곳을 답사했습니다.   천안시 목천읍 서리 73-10번지는 그렇게 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곳에서 평생 밥벌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독립기념관을 랜드마크로 하면 멀기는 하지만 찾아오는 것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고, 천안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정도의 거리여서 그런대로 접근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조금 더 조용하고 느리게 살 수 있다면, 지금부터 그렇게 살아보기로 작정했습니다. 한약은 하루아침에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신뢰가 쌓이는 것이 한의원의 속성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한의원을 찾는 이들을 기다리는 한의원으로 ‘약선’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slow life’는 그렇게 해서 약선당이 지향하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십년 넘게 경험하고 2년 동안 직접 해본 한의학을 한적하고 넓은 공간에 2005년부터 7년여에 걸쳐 마음껏 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조그만 정원에는 잔디와 꽃을 심어 항상 푸르고 꽃이 피도록 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한약으로 쓰이는 약용식물을 심어 그들의 1년을 관찰했습니다. 백수 2년 동안 손으로 만졌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원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은 주어진 조건에 소리 없이 순응하며 자신의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아우성이 아니라 겸허한 성숙이더군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고 그 자체로 완전한 자연이었습니다. 질병의 고통을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정원은 가르쳐주었습니다. 저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이들이 헤쳐 온 삶의 이야기는 늘 경이로운 소설과 같았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러 다녔던 과정과 경험은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목소리였습니다. 약선당의 진료실에는 소파를 놓아 편안하게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였고,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들으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약선당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한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정직하게 치료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질병은 통증으로 찾아오지만 마음에는 고통으로 자리 잡지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아 마음이 홀가분해진 덕분에 고통이 줄어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원인은 모르지만 치료하는 두려움을 잠재우고, 그 원인을 차분하게 바라보면서 치료한다면 결과는 한결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약선’에는 한약에 관한한 신선처럼 되고 싶다는 제 욕망도 들어 있습니다. 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