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당 한약이야기

한의학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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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당과 나의 한의학 이야기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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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의학순환구조론 1 선생님과 만나기 이전의 한의학은 표현이 안 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때도 임상가들 중에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의사는 많았습니다. 그 강의를 들어 보아도 한의학은 여전히 그 무엇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서양의학지식과 견주어지는 의학적인 지식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한의학은 질병현상인 증상을 나열하고 분류하고, 그 증상이 일어난 원인을 설명하고, 그 원인을 치료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위 문장은 의학의 역할로 볼 때 정말 완벽합니다. 증상이 있고 원인이 있고 그래서 진단이 가능하고 치료방법이 있습니다. 한의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의학은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습니다. 선생님과 만난 이후 이 문제가 한 순간에 풀렸습니다.   그 답은 한의학을 설명하는 용어의 이미지가 안개 속에서 보는 것처럼 흐릿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만 풀면 한의학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담음을 물질로 이해했던 것처럼 한의학이 다루고자 한 것이 인체라고 생각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학이 가장 빠른 길이었고, 과거의학 속에서 해부학적인 사실들을 들여다봄으로써 해부학적 지식의 수준을 시대 순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양의학적인 지식에서 보면 구조적인 인체는 의학의 근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조직화된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은 유추할 수 있었으며, 구조 덕분에 작용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이 인체를 다룬다면 인체를 설명하는 해부생리학적인 사실들을 당연히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역으로 해부생리학적인 사실들은 한의학의 이론들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부생리학을 서양의학의 모든 것으로 보지 않고 인체를 이해하는 도구로 보아야한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지요.   현대의 해부생리학은 이미지가 부족한 한의학의 용어들을 꿈틀거리며 숨 쉬게 하는 터전이 되어주었습니다. 한의학순환구조론은 한의학의 용어들을 해부생리학의 용어로 옮기는 작업인 동시에 한의학을 했던 옛날 의사들의 해부생리학적인 생각을 읽어내는 이야기입니다.   한의학의 처방은 질병의 증상과 증후를 다루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런 처방도 결국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질병의 증상과 증후를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이론적인 사실은 진찰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한의학의 진찰과는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약선당의 진찰방법이 조금 생소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증상과 증후를 듣고 변화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찾기 위하여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때로는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쉽게 찾아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탐정처럼 길게 사건을 연결하며 결론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찾았다 하더라도 제가 다룰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한의학순환구조론을 쓸 때는 잘 몰랐는데, 책이 팔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보편적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씩 치열한 논리 공방을 벌여야 겨우 이해하는 정말 어렵고 혁신적인 이론이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한 한의사들 중 몇몇이 약선당을 개원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9. 한의학 순환구조론 2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이 해부생리학으로 설명된다면 한의학은 의외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재의 해부생리학은 인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교재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 한의학이 밝혀놓은 인체보다 현대의 해부생리학이 밝혀놓은 인체에 대한 사실들이 훨씬 더 정교하고 방대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해부생리학의 발전은 전적으로 현미경의 발명에 의해 이루어졌고, 과거 한의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해부학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모든 한의학의 전문용어를 해부생리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한의학은 현대의학의 한 분야이거나 현대의학 속에 흩어져 있는 부분들의 집합일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다행하게도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은 해부생리학의 용어와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은 해부생리학의 용어들을 재구성하여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은 해부생리학적인 용어들보다 더 넓게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학문적인 상황에서 본다면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은 어떤 한계상황을 만나서 더 이상 분화되지 못한 상태라 생각했습니다. 해부생리학으로 설명되는 인체는 한의학의 전문용어들이 처해있는 한계상황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인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쉽게 한의학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한의학은 인체내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체와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의학이 그 무엇이며 설명되지 못했던 이유는 서양의학적인 범주, 즉 의학은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다루어야 한다는 개념에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서양의학이 개발한 기술과 한의학이 발전시킨 기술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은 한의원에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인체는 소우주라고 말하는 한의학의 덩치 큰 전문용어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해부생리학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의학의 전문용어가 거의 없는 상한론(추위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질병증상을 기술하고 치료법을 제시한 책)은 한의학을 설명하는 데에 아주 적합한 교재였습니다. 증상과 증상들의 일정한 모임인 증후는 해부생리학으로 잘 설명되었고, 그 설명에 따라 처방을 분석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상한론을 쓴 저자가 어떤 의도로 처방을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상한론의 저자는 나름대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잘 다루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한의학 순환구조론은 이미지를 담고 있는 언어의 이야기에서 출발했고, 해부생리학과 한의학이 만나기 위한 조건을 부여했으며, 상한론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 적용 예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한의학순환구조론을 책으로 내면서 내심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 정도면 누구나 알 수 있고 서양의학을 조금만 알아도 충분히 한약을 쓰는 방법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이해할 정도의 한의학이라면 한의학을 하는 사람이면 쉽게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모든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책이 팔리지를 않더군요.   출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이 알음알이로 찾아왔습니다. 한의학순환구조론을 알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서 한의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약선당의 씨앗이 하나 더 뿌려진 것입니다.   그 때의 만남으로 인해 지금도 약선당은 수요일 오후 진료시간을 비워 놓게 되었습니다. 주중에 만나는 것은 찾아오는 사람이나 만나주는 사람 모두에게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함입니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