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당 한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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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당과 나의 한의학 이야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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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승을 찾다. 넉넉하지 못했던 천안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약 2년 정도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숨쉴만해지면서 공부 방법을 찾았고, 맨 먼저 천안에 강의를 유치하기 위해 한의사들로 이루어진 공부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듣고 싶었던 강의는 한의학의 기본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주역 음양오행론 오운육기학 명리학 등이었습니다. 한의대에서는 말만 무성했지 실제로 접해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었고,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수소문해서 찾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기상학인 오운육기(운기)는 은퇴하신 어느 교장선생님을 섭외하였고, 사주팔자로 운명과 질병을 판단하는 명리학은 한약방을 하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에게서 몇 달 강의를 들었지만 특별한 면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운기는 처방을 선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명리 역시 뾰족한 수단을 제공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명리를 강의해주신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한의학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충격적인 몇 마디가 뇌리를 파고들었습니다. ‘담이 들었을 때 담이 몇 되나 되는지 아느냐?’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고, 답은 두되 정도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을 물질이나 정량화된 개념으로 설명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흉곽을 이루는 늑골들 사이에 그 많은 양의 병리적인 물질이 고여서 움직인다면 그 질병은 서양 의학적으로 분명했습니다. 선생님이 보신 것은 서양의학적인 질환이전의 상태이거나 또 다른 무엇이어야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한의학의 이론적인 문구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체에 숨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체의 기능과 구조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책은 한문으로 기록된 과거 한의학의 서적이 아니라 현대에 만들어진 해부학과 생리학교과서입니다. 한의대에서 공부했던 해부학과 생리학 책을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임상경험과 한의학의 이론과 해부생리학의 내용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옛날 사람들도 해부학 즉 인체의 구조를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현대와 다른 점은 현미경으로 찾아낸 인체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의학은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비유로 설명했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해부생리학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한의학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한의학의 고전은 인체의 미세한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질병의 증상을 다루는 방법(처방)은 임상에서 효과를 발휘하여 치료한 경험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약선당에서는 이렇게 한의학의 고전들을 현대의 해부생리학으로 재해석한 내용을 토대로 진료와 치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재해석했다고 해서 고전의 처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유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해부생리학적인 사실에 한약의 치료가 다가갈 수 있도록 처방을 좀 더 날카롭게 운용하도록 도와줍니다.   이제 처방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네요. 당시에 저는 초본식물로 이루어진 처방의 효능이 미약하다고 생각해서 광물질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광물질은 성분이 확실하고 독성도 있기 때문에 효능도 확실할 것이라 여겼지요. 생각만 그렇지 혼자 공부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 선생님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요. 우리 한의원에 벽제(희귀한 약재)를 공급하던 분에게 부탁했는데 한 달 만에 찾아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을 초청하기 위해서 서울 종로 창신동의 골목길을 더듬어 허름한 단독주택으로 찾아갔습니다. 손바닥 만 한 한약방간판이 대문에 걸려있었습니다. 금석지제(광물질 약재)를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몇 가지 약재에 대해 물어보시더군요. 앵무새처럼 책에 있는 몇 마디를 주워섬길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으시는데 무식이 탈로나면서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그리곤 웃으시면서 본초나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반문하시더군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식의 벽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절벽이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한의학만이 아니라 인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7. 먼 곳에서 길을 보다. 선생님을 천안으로 초빙한 강의는 3회 만에 중단되었습니다. 같이 강의를 듣던 원장님들은 강의 내용을 탐탁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반대로 선생님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한의학을 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란 확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내가 그렇게 찾고 싶어 했던 한의학은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한의학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말하자면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이론을 알고 싶었던 셈이지요.   강의를 중단하고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우선 무작정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첫날 당돌하게 질문을 풀어 놓았습니다.   “한의학이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하게 대답해주시더군요.   “한의학은 자연학이야. 아! 그리고 인간학이기도 해.”   잘 이해가 안가서 머뭇거리자 한마디 더해주셨습니다.   “박물학 알지? 자연사학 말이야. 한의학은 박물학을 하는 것과 같아.”   마침내 이 몇 마디 말씀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한의학의 이론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담음에서 출발한 인체공부는 당연히 해부학 책을 보았고, 생리학 책을 읽었습니다. 한의학 서적에 쓰여 있는 단어들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이제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지 6개월 만에 상한론을 독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선생님의 언어가 아닌 해부생리학의 언어로 한의학의 이론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선생님과 똑같이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선생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응용하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한의학 언어의 피상성, 즉 이미지화할 수 없는 상황을 깨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가면 한의학 용어의 적용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지를 집요하게 확인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늘 당신의 언어로 유창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을 확인하고 이해하기 위해 몇 달씩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기다렸습니다. 그 답들은 대부분 해부생리학과 자연과학의 책들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현대의 학문 속에 쪼가리처럼 널려있는 지식들이 선생님에게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자연과학의 용어가 아니었지만 자연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 것이라 짐작했지요.   한의학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그 시각과 도구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의 시각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권순종원장님이 쓰신 ‘의문췌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 결과 1999년 마침내 ‘한의학 순환구조론’을 쓰고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지금의 약선당을 있게 한 한마디 말씀이 있었어요.   “이원장, 약재는 어떻게 관리해? 깨끗이 세척해서 쓰지?”   어떤 경험이나 이론을 말씀하시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한약재의 채취와 유통과정을 볼 때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세척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약효와 분량의 손실은 많아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후 약선당은 모든 약재를 두 번에서 세 번 씩 세척하여 건조한 다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4편에서 계속